2009.09.18 18:03
Posted by 스프린트

1인 창극의 대가 공옥진선생님, 쓸쓸한 노년 뇌졸중 투병중

클럽스프린트 핫이슈, 1인 창극 대가 공옥진

   1인 창극 '병신춤 대가' 공옥진선생님 쓸쓸한 노년, 뇌졸중투병 안타까운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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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공옥진 뇌졸중


'병신춤'의 대가 공옥진(78.여)선생님 병마와 싸우는 쓸쓸한 노년 모습..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지 못해, 무관심 속 1인 창극 맥이 끊어질 위기에 놓여.

공옥진 / 한국무용가
출생 1931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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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노년을 보내며 뇌졸중으로 투병중인 공옥진선생님의 사연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어 눈길을 주고 있다. 

공씨는 현재 전남 영광군 영광읍 교촌리 4평짜리 작은집에서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거주하고 있다. 
공씨는 5년 전인 2004년 여름에 방송녹화를 마치고 나오던 중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1998년에 이은 두번째 뇌졸중. 
이 때부터 몸의 왼쪽 기능이 마비된 공씨는 조금만 움직여도 얼굴 근육에 통증이 나타나는 3차 안면신경통에 시달려.. 
설상가상으로 2년 전 산책을 나가다 집 앞 큰 길가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공씨의 몸은 급속도로 쇠약해졌다. 
1998년 영광에 내려온 공씨는 뇌졸중을 이겨내며 '만년 예술혼'을 불태웠다. 뇌졸중을 딛고 국내외에서 
공연활동을 재개하는 등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삶의 애착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다. 



하지만 몸을 돌보지 않는 그의 투혼은 결국 두 번째 뇌졸중의 원인이 됐고 결국 기약없는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의 하루 일과는 5~6평 정도의 마당에서 한두 차례 산책하는 것과 매일 병원에서 침과 주사를 맞으며 통증을 
줄이는 것이다. 공씨는 자신의 병마보다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병신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78년 서울 공연 이후부터다. 

독창적인 1인 창무극인 그의 춤은 판소리와 재담, 무용이 함께 어우러지는 한편의 드라마로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병신춤'은 그가 살아온 삶의 압축판. 해방후 가족과 헤어진 공씨는 신체장애가 있는 걸인, 각설이패와 함께 생활했다.
일반인과 다르게 손과 발을 뒤틀거나 꼬고 다시 풀어헤치며 흥과 멋을 내는 그들의 모습에서 '병신춤'을 고안한 것이다. 
이후 미국 링컨센터와 카네기홀, 일본, 영국, 유럽 등 전세계에서 그의 서민적인 1인 창무극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온 국민을 부채 하나로 울고 웃게 한 그의 예술혼도 수제자 3명 모두가 중도에 포기해 맥이 끊어질 위기에 놓였다. 
한편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던 공씨는 '1인 창극'이 문화재 장르에 포함돼지 않아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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